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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종 7년도 소유자(1552) 1월 2낮(행복감)
07-01-02(02) 하나 또는 둘 이상한 나라 반대 사례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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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두가 외국을 접수한 사례를 복사하여 보냈는데, 그 사례가 조선의 《고려에 곧(高麗) 이인임(李仁任)과 그의 아들 이성계(李成界)의 《대명회(大明會典)》라는 글이다. 단(丹)으로 이름을 바꾼 洪害는 홍우 6년부터 홍우 28년까지 왕씨 4명의 왕을 弑害(弑害) 전후 모두 죽였는데 먼저 기다리라고 한다.) 다음과 같다.
“조선 오래된 고려사람덕홍무 2년에 왕이 사신을 보내어 편지를 보냈다. 즉위식그들은 그를 축하했고 그도 책을 요청하고 방을 보냈습니다. 5년째에는 3년에 한 번 혹은 1년에 한 번씩 사자를 보내 조공을 바쳤다. 1925년 국호를 조선으로 바꾸었다. 영락 원년에 왕은 조훈(祖訓)에 기록된 시가 망한 것을 사죄하고 수정을 허락하였다. 이후 매년 성절(聖節), 정단(正旦), 태자 천추절(皇太子千秋節)에 사신을 파견하여 조문과 선물 및 기타 경위, 감사 등의 메시지를 보냈다. 모두 정해진 날짜 없이 진행되었습니다.
그리고 태도(조선시대)나라에 큰 일이 생기면 사신을 파견하여 조서를 내리고 왕이 즉위를 요구하면 사신도 파견하여 의례를 거행하였다.
가가 8년에 한 나라 사신이 “왕은 이인임의 후계자가 아니다”라고 하여 그들이 보낸 신하들을 사관에 보내도록 명하였다. 지금은 해마다 조공을 바치고 있는데 다른 나라에 비해 예의범절을 안다고 할 만하다.
26년에는 이 나라의 사신과 외무대신, 수행원 2~3명을 특별히 제례와 구오자감에 참석하게 하여 그를 보호하였다.”
(원문) 20쪽 68쪽
【분류】외교 – 명나라 / 왕실
(주로-D001) 태도(조선시대):
중국 적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