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 그날이야기 순경 총기난사사건

우범곤 총기 난사 사건

우 그날이야기 순경 총기난사사건 1

우 순경은 20대 여성과 교재를 하고 동거까지 하게 된다.

하지만 여자의 집에서는 이들의 관계를 결사반대하는 그렇게 동거하던 어느 날 우 순경의 가슴에 파리가 앉아 있었다.

그 파리를 쫓기 위해 여자가 가슴을 치는 순간 우 순경은 여자와 싸우기도 하고 때리기도 한다.

동네 사람들이 싸우면서 동네 사람들이 말리면서 시작된 일이다.

우 순경은 경찰서에서 술을 마신 뒤 총을 들고 마을로 향한다.

그가 술만 마시면 개가 되는 극도로 분개하던 우 순경은 닥치는 대로 총을 뿌리는 집, 그리고 동네 사람들 우 순경이 있던 지서는 궁류지서장 차석순경까지 모두 4명이 근무하는 작은 경찰서였다.

그렇게 많은 죽음에도 출동하지 않았던 이들은 온천에 있던 “정말 한숨만 나온다” “주민들의 신고로 그들은 사실을 알게 된다” “궁유지서장과 차석은 총을 들고 우순경으로 진행에 반대 방향으로 향했다.

자기들만 살기 위한 진짜 이기적인 사람들이다… 궁유우체국에 숨겨진 이야기 전화교환원 그들의 애틋한 이야기 교환원 둘 다 사망 그들은 죽기 직전까지 신고를 했다… 밤 10시 반의 시간이었다.

1시간 거리에 경찰서에 신고했지만 이들이 출동하지 않은 이유는 무기고 열쇠가 없었기 때문이었던 무기고 열쇠를 가진 사람들은 술을 마시고 있었다.

이들은 열쇠를 찾아 걸핏하면 출동하게 되는데 이들은 수색도 검거도 시도하지 않고 경찰서장은 부산에 있다가 뒤늦게 연락을 받고 온다.

그 당시 12시 30분, 그저 보고만 하면서 사무실에 앉아 있었다.

마을 주민 2명이 빗속을 헤쳐 신고했고 경찰서장을 만나 얘기를 나눴다.

마을 상황을 이야기했지만 경찰서장의 대답은 어둡고 무서워서 출동할 수 없다는 답이 돌아왔다.

▲조용해지면 출동한 경찰=그때 우 순경은 서 이병의 집에 있었다.

멀리서 출동한 경찰차가 보이는 우 순경은 군중 속에서 수류탄을 터뜨려 모여든 사람들과 함께 사망한다

이 사건으로 무려 90명의 사상자, 이날 144발의 탄환 중 회수한 탄환은 단 9발.

우익 경찰관이 총으로 마을을 파괴할 때까지 다른 경찰관은 총알 한 알도 쓰지 않은 길, 마당, 마을 곳곳은 피투성이였던 그 당시는 너무나 서글펐다.

사망자 명단에는 1세 남자아이와 10세 이하에는 6명, 생후 1개월 된 아기까지 있었다.

단시간 한 사람에 의한 연쇄 살인

특수경비처 우 순경은 청와대 경비단이었다.

넉 달 만에 발탁된 그는 주사로 다른 지사로 옮겨지는 우범곤의 별명은 미친 호랑이였다.

8개월 뒤 근무 부적격 판정을 받아 궁유지서로 가는, 과연 청와대에서 근무 부적격이었던 이우순 경을 다른 곳으로 보내는 것이 옳았을까.

최초 신고는 밤 10시 34분으로 알려졌지만 신고한 시간은 실제 10시 5분쯤이었다고 한다.

범행 직후의 시점이 지났지만 일지를 확인하려는 순간 뭔가 이상하고 찢어진 듯한 상황일 수도▲결론 혐의 없음=이례적인 후속조치를 먼저 징계받은 뒤 조사=1982년 전두환 대통령 시절 고교생 머리 자율야간 통행금지 철회 등 민심을 잡기 위해 4월에 일어난 우 순경 사건이 발생한 지 얼마 되지 않았다.

기네스북에도 오른 사건 직후 마을에서는 3일간 장례를 치렀다 마을에서는 3일간 56개의 만가가 불렸다 기록마다 다른 사망자 수

55명 사망, 36명 부상?62명 사망?관계 부처에 연락해 조사했는데 56명으로 기재되어 있다고 한다.

사건 이후 부상 정도가 심해 숨진 사람은 확인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상한 것은 뒷조사조차 하지 않았다는 점이야 저마다 다른 사정을 가진 죽은자들..

정확히 기억하고 다시는 만들어선 안 될 사건이지만 백서조차 만들지 않은 사건들, 2022년 4월이 되면 40주기가 된다.

막았지만 막지 못한 사건, 주어진 책임을 다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4월 26일로 기억해야 할 날이 남은 유족들은 유령비라도 세워졌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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